물렁한 박두부

[해준백기] 달큰한

단문2015. 2. 28. 19:37

[해준백기] 달큰한.

(어슴푸레한 새벽의 물 한잔)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문득 컴퓨터 화면 오른쪽 아래를 내려다보자 보이는 시계는 이미 새벽 세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시간을 체감하자마자 온 몸이 이때다 싶게 찌부드 한 게 백기는 잠시간 고통에 신음했다. 밝은 빛을 내는 화면에 가득한 서류와 보고서의 글자마저 흐릿하게 보임에 안경을 벗어 눈을 가볍게 주무른다.

 

딱히 강해준 대리는 숙제를 주듯 퇴근 후까지 일을 끌어가서 할 만큼 무리하게 일을 주는 편이 아니었다. 늘 마감기한에 촉박하지 않게 주는 편임에 지금껏 백기는 조금 늦게 퇴근하거나, 아니면 조금 이른 출근으로 커버가 가능한 일만 해왔었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조금은 미안한 얼굴로-백기의 착각일지 모르지만-내일 아침까지 갑작스럽게 제출해야하는 기안서가 있다며 백기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뭐라 불만은 터뜨리기도 애매한 건 해준의 손과 가방에는 더욱 많은 서류뭉치들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덕분에 취미에도 없던 회사 일을 집까지 끌어들여 백기는 어슴푸레하게 새벽빛을 뿜는 시간까지 서류를 작성해야했다. 얼추 마무리 지어져 내일 조금 이르게 출근하면 제출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백기는 제 메일로 서류를 보낸다.

 

물 한잔만 마시고 잠들어야지. 저릿한 다리를 대충 주먹을 말아 톡톡 두드리며 일어선 백기는 냉수 한잔을 들이켰다. 목젖부터 천천히 적시며 내려가는 차가운 물이 그대로 느껴져 백기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역시 새벽녘은 쌀쌀하구나. 일하느라 올렸던 니트의 소맷자락을 내리며 다시금 물을 머금는다. 송골송골 찬 물방울이 표면에 잔뜩 맺힌 유리컵을 뻑뻑한 눈에 가져다댄다. 눈이 뻑뻑할 때 가끔 하는 백기의 버릇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꼬물, 애벌레처럼 몸을 말아 포근한 이불로 파고들었다. 축 몸이 가라앉는 걸 느끼며 이불을 가슴 앞으로 모아 고개를 이불에 파묻는다.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 것에 머리가 지끈거릴 것만 같지만 잡생각을 줄이자 슬슬 잠이 오는 게, 크게 하품이나 하고 눈을 감는다.

 

*

 

  내가 알람을 어제 맞췄던가. 다시 생각해보니 아니요. 젠장! 불에 덴 듯 일어난 백기가 발에 휘감긴 이불로 인해 휘청 이며 코를 방바닥에 찧었다. 욱신거리는 코를 대강 문지르며 화장실로 달려가 폭풍 같은 양치를 하고 대강 옷을 주워 입었다. 늘 고수했던 단정한 패션과 깔끔한 스타일은 어디가고 머리를 세울 생각조차 못한 채 넥타이를 휘날리며 길가로 나섰다. 어젯밤에 머리를 감아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눈을 찔러오는 앞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 올리며 택시에 올라탔다.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저를 도와줄 조력자를 찾았지만 눈에 띄는 이름이 영 없었다. 석율은 저번에 부탁했지만 그마저도 소용없이 강 대리님께 바로 걸려버렸고. 영이나 그래에게 부탁하긴 뭔가 껄끄러웠다. 액정을 몇 번이나 위아래로 쓸어내던 백기의 손가락이 강해준 대리님. 이름 위에서 멈칫했다. 사우나도 다녀왔고, 이젠 제법 농도 걸만큼의 사이는 된 것 같은데 말씀을 드릴까, 싶었지만 백기는 이내 그만뒀다.

 

빨리 달려가서 준비하면 되겠지. 택시아저씨를 몇 번이고 재촉하며 백기는 불안감에 다리를 떨어댔다.

 

 

*

 

 

, 오우 백기쒸, 머리스탈 바꿨.

바빠요, 미안해요.

 

15층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석율의 말을 끊으며 백기는 후닥 뛰어 들어갔다. 뒤에서 아, 백기씨~! 라며 항의하는 석율의 소리가 들리지만 나중에 대충 커피나 타줘야겠다 생각하며 백기가 제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급하게 시계를 확인한다. 9시 정각. 지각은 아니지만 팀의 막내로서 제일 늦게 들어간 게 영 눈치가 보여서 옆자리를 힐끔거리자 해준이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늦을 뻔 했네요.”

“..., , 죄송합니다. 대리님.”

, 시간상으론 늦진 않았지만 다음에는 조금 더 주의하세요.”

“....”

 

해준의 표정을 살펴도 그리 화나보이진 않아서 안심하던 백기가 무심코 후끈한 이마를 훑자 닿는 머리카락에 그제야 제 머리상태를 상기한다., 이럴 수가. 낭패감에 귓가가 더욱 후끈하다. 기본적으로 제일 먼저 출근해서 책상 정리 후 조간신문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는걸 중요시 여기는 백기로써는 오늘은 시작부터 참으로 엉망이었다.

일을 하다가 늦게 일어나지 않나, 아침부터 쓸데없는 택시비 지출에, 뛰느라 땀이 비 오듯 하고, 단정하고 스마트하게 보이기 위해서 늘 고정시키듯 올린 머리스타일은 어디가고 정신없이 산발이 돼 붕붕거리는 제 부스스한 머리칼. 당황스러움에 재킷을 대강 걸치고 화장실로 가려던 백기를 해준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붙잡는다. 장백기씨, 서류는 다 됐습니까.

아차, 아직 마무리 할 부분이 남은 서류가 번뜩 머리를 스친다.

 

“10, 10. 아니 5분이면 마무리 됩니다.”

“...서둘러 주세요.”

 

잠깐 이어진 침묵 속에서 복잡한 듯 한 눈빛을 읽었지만 애써 참아낸 듯 낮은 음성만 뱉을 뿐인 해준에게 면목이 없어 백기는 뒷목을 한번 주무르곤 무섭도록 타자를 두드린다.

 

 

*

 

하아, 간신히.., 기진맥진한 백기가 눅진한 몸을 다잡으려 노력하며 비틀 탕비실로 향했다. 쓴 커피라도 마셔야지 도무지 핑핑 도는 머리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보다 훨씬 피곤할 것이 분명한 대리님은 백기가 미친 듯이 마무리 한 서류를 들고 서둘러 회의실로 향했다. 늘 완벽하고 단정했던 해준이지만 오늘따라 퀭한 눈을 숨기기 힘들어 보이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백기는 15층 탕비실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건물 밖으로 나서자 그제야 제가 왜 코트를 안 챙겨왔는지 원망을 삼키며 얇은 셔츠차림으로 오들오들 떨며 회사와 두 블록 정도 떨어진 커피전문점으로 향했다. 강 대리님은 아메리카노..., 평소 사수의 취향을 떠올리며 주문하려던 백기의 눈에 무언가 달달한 단어가 보였다. , 이런 거 싫, 어 하시려나. 드리면 인상부터 확 찌푸리시는 거 아냐?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카운터 앞에서 조용하게 고민하는 백기에 주문이 진행이 없자 뒷자리 여자가 무어라 큰소리로 불평했다. 그에 어깨까지 떨며 놀란 백기가 무심결에 외친 단어가 삑, 제 눈앞의 액정에 입력되는 걸 봤음에도 차마 무를 생각조차 못한 채 백기는 살그머니 체크카드를 내밀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

 

뻐근한 눈을 비비며 제 목을 죄는 넥타이를 풀던 해준이 천천히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후우, 절로 나오는 한숨소리에 더욱 몸이 가라앉는 느낌이라 애써 털어내려 미간을 한번 꾹, 눌렀다. ..., . 리님. 옆에서 잔뜩 기죽은 백기의 목소리가 들리기에 그대로 손을 내려 바라보자 쭈뼛, 어깨가 잔뜩 움츠러져 있다. 오늘은 별다른 말도 안했는데 왜 저러지.

 

왜요, 장백기씨.”

, 그게. 이런 거, 싫어 하실 꺼 같지만, , 아는데 그래도.”

장백기씨, 누누이 말했죠. 하고자 하는 말을 분명하게 말해야 상대방이 쉽게 인지한다고. 바이어들에게도 그리 자신감 없이 말할 껍니까?”

, 이거 드십시오!!!”

 

냉정한 해준의 말이 쏟아짐에 따라 점차 숙여지던 고개가 별안간 불쑥 들리더니 해준의 코앞으로 무언가 후끈한 게 들어찼다. 놀라 동그래진 해준의 얼굴을 쳐다도 못 본 채 계속 바들거리는 손으로 붙잡고 있는 건 테이크아웃 컵이었다. 아니 커피 주면서 계속 그렇게 우물거리는 거였어? 의아함에 받아들자 달큰한 냄새가 훅 끼쳤다. 저도 모르게 코를 씰룩이자 백기가 해준의 얼굴을 확인하고 어쩐지 울상이 된다.

 

, 시 바꿔올까요?”

이게 뭡니까 장백기씨?”

, . 대리님께서 아메리카노를 즐겨 드시는걸 아, 는데요.”

.”

피곤할 땐……..., 좋다고...해서요...”

 

끝으로 갈수록 음소거를 하는 건지 점차 입안으로 먹히는 소리에 끝소리는 거의 들리지도 않는다. 그래도 척하니 알아들은 해준이 백기의 붉은 눈 꼬리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컵을 기울여 핫초코를 머금었다. 이리 달짝지근 한건 영 취향이 아니었다. 제 건강을 해치는 것만 같은 그런 해로운 느낌이었기에 즐기지 않았다. 그런데 썩 나쁘지 않은 게,

 

맛있네요. 장백기씨.”

?”

마침 피곤했는데, 고맙습니다.”

“.......”

이제 일 하러가죠?”

, !”

 

금방 사무적인 톤으로 돌아온 해준에 다닥, 뒷걸음질을 쳐 제 자리로 돌아간 백기가 잠시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쏙, 파티션 안으로 몸을 숙인다.

무얼 하는지 모르겠지만 다리를 제자리에서 굴려대는 게 보여 해준이 조금 웃었다.

 

*

1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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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백기] 무딘 이별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평소처럼 출근을 해 평소처럼 일을 했고, 중간에 사소한 실수로 인해서 날카로운 한소리를 듣기도 하고. 소란스러운 동기들과 함께 탕비실에서 실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기도 하고, 평소처럼 그의 차를 탔고, 그의 집에 갔고. 지독히도 똑같은 일은 마치 정해진 일정처럼 또다시 반복하던 순간을 깨트린 건

백기, 저였다.

 

우리, 헤어졌으면 좋겠어요.”

 

그 말마저도 참으로 가볍게 떨어졌다. 망설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말을 뱉은 순간만은 망설임 따위 없었다. 몇날 며칠을 고민해왔던 짧은 문장이지만, 고민이 끝나자 말은 쉬웠다.그 말에 저에게 따끈한 핫초코가 든 머그컵을 건네던 그의 손이 조금 멈칫 한 듯도 싶었지만, 그는 컵을 백기의 손에 쥐어준 채 그저 옆자리에 풀썩 앉을 뿐이었다.후룩, 그가 든 컵에선 씁쓸한 커피향이 풍겼다. 몇 년을 봐도 익숙해 질 수 없는 맛과 향이었지만, 그 마저도 강해준이기에 좋았다.

 

  그래요.”

 

그가 입을 열자 쌉쌀한 향이 풍겨왔다. 아직도 온기를 품은 그의 숨이었지만, 그 온기는 백기에게로 닿기 전에 차갑게 식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이럴 때마저도 지극히 사무적인 톤에 서운함과 분노가 치솟았지만, 천천히 향을 음미하며 마시길 좋아했던 커피를 꿀꺽, 꿀꺽 단숨에 의무적으로 들이마시는 그의 모습이 보여 백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기뻤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의식은 하는군요.

더 이상 제가 여기 있을 이유는 없으니, 가볼게요. 그의 방으로 들어가 큰 가방을 메고나오자 그의 눈이 조금 둥그레졌다. 이제와서 놀라지 마세요. 당신의 무관심에 지쳐갈 무렵부터 하루에 내 물건 한 개씩, 그렇게 싸왔던 짐이니까. 몰랐다고 할 수 없겠죠.

당신의 집을 채우고 있던 내 물건을 하루에 한 개씩 챙겼다는 건, 당신이 이런 나를 눈치 채고 챙길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는 거. 그러나 당신은 그리 하지 못했다는 거.하지만 당신의 그런 성격을 지독히도 아는 건 저였는데, 뭐 그리 미련을 떨었는지 모를 일이네요. 백기는 조금 우는 듯 울었다.

  가방의 무게가 새삼 백기의 몸을 휘청 이게 했다. 떨림에 당기는 턱을 조금 강하게 닫아 물고 백기는 연인으로써 마지막일 인사를 고했다.

 

걱정 마세요, 저도 이제 2년 전의 풋내기가 아니니. 회사에서 티를 내는 일은 없을 겁니다.”

 

, 하긴. 아무도 대리님과 제가 그런 관계란 걸 몰랐을 테지만요워낙 철저하게 숨겨지는 둘 사이의 관계가 서운하기도 했다. 사적인 일을 공적인 공간에 끌어들이지 말자는 그의 분명한 말에 동의한 저도 잘못인지라 할 말은 없지만.

내일부터는 정말로 공적인 관계가 되겠네요. 사수-부사수. 그런 관계.

 

백기는 고개를 조금 숙여 인사를 하곤 집 밖으로 나갔다. 차마 목도리를 걸치지 못해 드러난 훤한 목덜미가 시렸다.

 

*

 

해준은 소파 등받이에 천천히 등을 기댔다. 제가 썩 마음에 들어하던 푹신하고 매끈한 질감의 소파였지만, 오늘은 제 등을 편안히 받아주는 게 아니라, 밀쳐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분명 집안의 온도는 후끈할 정도였음에도 해준은 손끝부터 차갑게 얼어붙었다. 서늘한 손가락을 문질러 온기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손이 더욱 시려 그만둔다.

백기가 지쳐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숨기지 못하는 아이니까. 사랑해주세요, 늘 눈으로 말하던 아이니까. 하지만 그만큼 해준도 그런 백기에게 질려갔었다.

 

본디 다정하지 못한 성격인 저로써는 해준은 백기에게 참으로 저답지 않은 행동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다르지만 둘이 함께 가서 맞춘 커플링이나, 매일 저녁 제 집으로 데려와 사랑을 나누고, 만지고 접촉하는 일련의 과정들. 누군가와 닿는 것조차 달가워하지 않던 저가 살을 맞대고 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는 것 자체. 백기의 커다란 가방이 하나씩 채워지는 걸 보고도 모른체 한다. 가벼웠던 가방이 하루하루 묵직해지지만 해준은 애써 무시해왔다. 늘 그 가방을 들고 제 곁을 떠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오늘은 아니었다. 아니 아닐꺼라 믿었던 거겠지. 묵묵히 앉아있던 해준이 쑤셔오는 머리를 가볍게 저었다. 지독한 두통이다.

 

 

-

지독한 권태로움 끝에 찾아온 무딘 이별. 눈물따윈 없는 이별을 쓰고싶었는데....(결과물:뭐, 뭐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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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대리님 주의 ;ㅅ;

 

[해준백기] 동상이몽

(같은 침상(寢床)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같이 행동(行動)하면서 속으로는 각기 딴 생각을 함을 이르는 말)

 

고작 부러지기 쉬운 얇은 뼈를 감쌀 뿐인 얇은 피부는 상처입기 쉽다. 파리하게 긴장된 근육과 힘줄의 떨림이 얇은 피부를 통해 해준에게로 전해진다. 맥박의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지점를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강하게 눌러주자 제 밑에 깔린 여자가 파득 몸을 떨었다. 반항이라 치기도 민망할 정도의 연약한 밀어냄은 해준의 눈빛에 더욱 이채만 가중시킬 뿐인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윽. 확보되지 않은 기도의 좁은 틈새로 눌린 신음이 새어나오지만 해준은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손가락에 더욱 힘을 주더니 이내 여자의 얇은 목에서 우득, 하는 소리가 났고, 이내 여자의 몸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 그제야 탁한 숨을 뱉어낸 해준의 입꼬리가 찬찬히 올라간다.

 

수고많았어요.”

 

-

 

끄응, 앓는 소리와 함께 쥐고있던 서류조차 떨군 채 백기는 책상위로 쏟아지듯 엎드렸다. 후우우, 낮게 뱉어낸 한숨에 묻어나는 달큰한 술냄새는 해준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어제 한석율이 방방 뛰며 다가와 백기의 귀에 귓속말과 함께 윙크를 날린거로 보아 친목도모를 핑계로한 술자리였음이 분명했다.

 

끄으으, 가래가 껴 걸걸해진 백기의 목소리 끝에 톡,토독 하고 손가락이 액정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숙취에 고통스러워 하는 와중에도 손가락이 액정위를 부산스레 움직이는 것, 그리고 장문의 욕설이 섞여있는 것으로 보아 보나마나 수신인은 한석율이겠지. 해준은 소리만으로도 뻔히 예상되는 백기의 행동에 작게 웃음짓다가 지잉 소리를 내며 울리는 프린터기로 다가간다. 인쇄된 서류의 오탈자와 함께 내용을 다시금 정리하던 꼼꼼한 눈빛이 조금 틀어져 백기의 엎드린 뒷모습에 가 꽂힌다. 평소 단정히 손질하던 백기의 머리가 엉망으로 흐트러진 것만으로도 백기의 컨디션은 알만했다. 안쓰러운 부사수를 위해 작은 위로라도 해줄까 싶어 해준은 평소라면 하지 않을 친절을 배풀기로 마음먹고 백기의 등 뒤로 다가갔다.

 

장백기씨.”

“...!!! ! 대리님!”

 

, 일어나란 얘기는 아니었는데. 해준의 목소리에 버릇처럼 벌떡 일어난 백기가 울리는 머리를 얼른 짚었다. 골이 딩 딩, 종소리라도 나는 양 흔들렸다.

 

앉아도 됩니다. 별로 뭐 시킬 껀 아니니까.”

......”

장백기씨. 놀라지 마십시오.”

“...?”

 

그 말을 끝으로 해준은 양 손을 백기의 어깨에 올리고 가볍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 , . 잠시만요 대리님. 괜찮은...!당황스러움에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고 손을 위로 아래로 어찌할지 몰라하던 백기가 해준이 손에 힘을 줘 누르자 작게 신음을 냈다. -.

 

놀라지 말라니까.”

아니, 그 저...”

 

무뚝뚝하고 저와는 옷깃을 스치는 일조차도 적었던 해준의 갑작스런 터치, 그리고 안마에 백기는 정신없이 눈알을 데루룩 굴렸다. 말려야하는데. 대리가, 일개 그것도 새파랗게 아래인 신입사원의 어깨를 주물러준다는 일 자체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지를 백기또한 알기에 엉덩이를 자꾸만 들썩이자 해준의 손가락이 스물스물 머리카락이 끝나는 지점의 목덜미로 올라와 꾹, 누르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요.

. 습관적으로 대답한 백기가 고개를 푹 숙인채 움직임을 멈추자 해준은 그제야 조용하다는 듯 손가락으로 백기의 목덜미부터 어깨를 쓰담듯 주물렀다. , . 백기의 몸이 파득 떨리자 해준의 움직임이 조금 잠잠해졌다.

 

, 대리님 그게, 아픈건 아니구요...정말인데...”

압니다.”

 

백기의 흐트러져 하늘 높이 솟아있는 뒷머리에 고정되어 있던 해준의 시선이 제가 쥐고있는 남자치곤 가느다란 목덜미를 향해 점점이 내려갔다. 조금씩 스쳐가는 어제의 선명한 기억이 백기의 뒷모습에 오버랩된 순간 해준이 천천히 손아귀에 힘을 뺐다.

 

“...대리님?”

장백기씨.”

, ...?”

 

수고 많았어요.”

 

무슨 뜻인지 감조차 잡지 못한채 뒤돌아 멍하니 해준을 바라보던 백기가 ... 작게 대답을 흘리곤 작게 웃음지었다. 해준또한 입꼬리를 찬찬히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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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백기] 분노

단문2015. 2. 28. 19:34

*모바일 주의



해준백기/대리백기




명치께부터 스믈스믈 올라오는 불쾌함이 숨 막히게 답답해 백기는 가슴 언저리를 신경질적으로 두드렸다. 이 답답한 통증의 원인이 불분명하다면 속이 안좋다던지, 아니면 피곤해서라던지 등의 판단으로 소화제나 꿀떡 삼켰을테지만 원인이 너무나도 분명한것이 백기의 신경을 더욱 건드는 요소였다. 이게 소위 말하는 잡은 물고기한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라는 걸까.



백기는 얼마전 복사를 위해 간 탕비실에서 신나게 이 '잡은 물고기-먹이 이론' 을 떠들어 대는 석율의 말을 불현듯 기억해냈다.


그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도 못했고, 또 으레 던지는 석율의 실없는 수다거리겠거니 치부해버리고 가볍게 흘려들었는데, 백기는 그때의 저를 찾아가 넥타이를 세게 졸라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런 연애의 이론 쯤으로 떠돌아 다니는 문장을 제가, 그것도 직접 몸으로 뼈저리게 느낄일이 존재하리라곤 생각조차 못했었는데. 백기는 한손에 쥐고있던 볼펜이 빠득 소리를 내며 바들거리는 것도 신경쓰지 못한 채 고개를 작게 틀어 제 오른편을 가로막은 파티션을 바라봤다. 항상 그와 저를 갈라놓던 회색빛의 차디찬, 그리고 어쩐지 한없이 높게만 느껴졌던 원망스럽게도 큰 존재감의 벽이 있다는걸 처음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극상. 하극상이 일어났을겁니다. 이게 없었으면.

잇새로 스읍. 숨을 들이 마시며 백기는 여직 쥐고있던 볼펜을 책상에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졌다. 분명 책상에 부딪히고 도루룩 굴러가는 플라스틱 소재의 볼펜 소리가 들렸을것이었음에도 무심하게 컴퓨터 화면에만 시선을 고정한채 키보드만 두드리고있는 제 사수. 강해준 대리를 백기은 몸을 굳이 뒤로 젖혀가는 노력도 서슴지 않으며 지긋이 쳐다본다. 드드득 당겨진 의자가 내는 소음이 작게 울린다.
끝까지 안보실껍니까? 대리님?



"장백기씨"
"에-네?!"
"일 안합니까"



시선은, 그 놈의 시선은 빌어먹게도 앞으로 고정한 채 무뚝뚝한 '상사'로서의 말이라니. 백기는 치미는 분노에 얼굴이 홧홧해져 신경질적으로 뜨끈한 눈을 짓눌렀다. 진짜 미워. 분노에 뒷목부터 정수리께가 쭈삣 일어서는게 느껴진다. -장백기씨. ...예.



"네. 일 안합니다."
"-네?"
"일 못하겠습니다. 저 잠시...



숨과 함께 목끝에서 간질거리는 분노를 겨우 삼켜낸 백기가 쥐어짜듯 소리를 냈다.



"잠시만 쉬었다 오겠습니다. "



대답을 기다릴 여력도 없어 백기는 말만 툭 뱉어내고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갑작스런 백기의 통보아닌 통보에 그제야 시선을 옮긴 해준의 시야에 백기의 시뻘건 목덜미가 잡힌다.
부끄러움? 부끄러울때 마다 목덜미부터 귀, 얼굴 전체로 붉음이 퍼져나가는 백기를 떠올린 해준이었지만, 그 생각은 곧바로 해준의 머릿속에서 묵살되었다.

백기를 부끄럽게 만들만한 상황은 한가지도 없었을 뿐더러, 저를 힐끗거리며 바라보던 백기의 눈빛이 평소와는 다른 온도였던걸 생각하며 해준은 손가락을 책상에 천천히 두드렸다.


딱,
​따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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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전력 제 3. 주제: [엘리베이터]

해준백기 / 박두부

 

.

장백기씨 여자 취향에 실망입니다.

 

평소와 같은 담담하고 딱딱한 말투였지만, 평소보다 한톤 정도 내려가 있고 무언가 짜증이란 감정이 섞여있다는 걸 맹추 같은 눈치를 가진 백기도 이번엔 단번에 깨달았다. , 그게 아닌데. 당황스러움에 후닥 해준의 뒤를 졸졸 쫒아가지만 평소였으면 느릿한 백기의 걸음에 맞춰 한 템포씩 느리게 걸었을 해준은 발걸음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 . 대리님! 결국 한톤 높게 질러버리듯 뱉은 백기의 다급한 음성에도 무뚝뚝하게 서류만 훑어보던 해준이 고개를 들 생각조차 않은 채 입만 열었다.

 

그렇게 애교 있고, 귀엽고, 덜렁대고, 일처리 하나 확실히 못하는 사람이 그리 좋습니까?”

, 대리님 그게 아니라. 그게 분위기에 휩쓸,”

그리 분위기 타기 쉬운 사람이었습니까?”

 

말을 하면 할수록 즉각적인 싸늘한 반응이 날아들자 백기는 한없이 목을 움츠렸다. 무의식적으로 아랫입술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다가 툭, 의미 없이 잡아당겼다 놓기를 반복하며 백기의 눈이 바삐 해준의 안색을 살핀다. 해준은 서류에서 고개를 때고 차츰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전광판만 바라보다 힐끗, 정말 미세하게 눈알만 데룩 굴렸다. 계속 해준의 얼굴만 살피고 있던 백기가 쫑긋, 몸을 곧추세우며 해준에게 어색한 미소만 보내고 있었다.

 

가서 일하세요. 장백기씨.”

 

허나 이내 떨어진 차가운 말에 금세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숙여야 했지만.

 

, 맑은 기계음과 함께 묵직한 쇠문이 열리고 쉽게 보기도 힘들 것 같은 묵직한 카메라로 찰칵이며 사진을 찍던-? 백기는 그 순간에도 의문이 들었다.석율이 냉랭한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하게 섰다. 해준은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는 석율의 인사를 무심하게 끄덕임으로 넘기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잠시 눈길을 준 것 외에는 아까 백기의 발언 이후에 한 번도 해준과 눈이 마주치지 못한 백기는 안절부절못함을 넘어서 정말 식은땀에 목덜미부터 등줄기까지 축축하게 젖어올 만큼 긴장했다. 문이 닫힙니다.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어찌 보면 해준과 닮아있는 딱딱한 음성과 함께 해준이 묵직한 쇠문 뒤로 몸을 감춰 사라지자 백기는 시큰해오는 코를 매만지다 옆에서 멀뚱히 서있는 석율을 애처롭게 쳐다봤다.

 

석율은 그 짧은 순간에도 대강 분위기를 눈치 챈 건지 아무 말 없이 제 카메라를 덜렁이며 한쪽 어깨에 맨 채 백기를 탕비실로 이끌었다.

 

*

 

 

백기씨, 영이씨 좀 본받으라고. 눈치가 없으면 코치라도 키워.

 

석율이 팔랑이는 몸짓으로 백기의 가슴팍을 대강 두드리고 떠난 뒤에도 백기는 한참이나 찬물이 든 종이컵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동그랗게 말린 종이컵 윗부분을 짓씹었다. 꽤나 아이 같은 행동은 백기가 극도로 불안하고 초조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곤 하는 습관이었다. 종이컵을 잘근거리며 씹다가 문득 며칠 전 해준의 집 소파에서 해준의 어깨에 고개를 뉘인 채 테이크아웃 커피 컵을 잘근거리며 씹던 백기의 입술로 들이닥친 해준의 손가락 감촉이 떠올라 백기는 빈 종이컵을 힘없이 떨어뜨렸다.

 서늘한 행동이나 말투와 달리 해준의 몸은 어디나 따끈했다. 그중 길고 곧은 손가락은 특히나 따듯해서 겨울마다 손이 시려워 늘 장갑에 핫팩을 달고 사는 백기의 손을 잡고 살살 문질러 주는 게 두 사람만의 소소하지만 달달한 스킨십 중 하나였다.

 

백기가 잘근거리며 컵 끝을 씹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티비에서 흘러나오잔잔한 로맨스 영화를 보던 중간 중간 고개를 힐끗거리며 불만스럽게 미간을 좁히던 걸 반복하던 해준은 결국 못 참겠다는 듯 검지로 백기가 물고 있던 컵을 눌러 내리고는 그래도 백기의 입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컵을 무느라 살짝 벌어져있던 통통한 입술 사이를 가르고 들어오는 뜨끈한 온도에 놀라 백기의 눈이 동그래지자 해준은 씩, 개구쟁이처럼 -믿기지 않지만 정말 단어 그대로- 웃곤 백기의 톡 튀어나온 앞니를 손가락으로 무디게 쓰다듬었다. 살살, 마치 어린아이를 진찰하는 치과의사처럼 이빨의 모양을 따라 쓸어내리는 해준의 손가락에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던 백기가 귀여운지 해준은 그대로 제 어깨에 기대느라 한쪽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말랑한 볼에 입술을 내렸다. , 쪼옥.

 

도장 찍듯 몇 번이고 내려앉은 해준의 입술에 움찔 거리며 눈을 깜빡이던 백기가 볼을 붉히며 여직 백기 제 이빨을 매만지는 손가락을 어찌 해달라는 듯 해준을 바라봤다.

 

 

이빨, 상합니다. 이제 컵 씹지 마세요.”

, .”

 

입이 벌어져 네, 라는 명확한 발음이 나오지 않은 게 꽤 창피해 발긋 귓가까지 붉어지자 해준은 홍당무네요, 백기씨. 라며 맑은 웃음소리를 터뜨렸었다.

 

그렇게 깨가 쏟아지듯 달달한 연애가 진행된 지 몇 달 지나지도 않아서 오늘 같은 대형 사고를 친 백기는 여전히 종이컵 모양대로 동그랗게 말려져 있던 제 손을 꾹 쥐어 주먹을 만든 뒤 멍청한 제 이마와 머리, 그리고 결과적으로 해준이 아닌 하대리와 유대리의 의견에 동조를 해버린 제일 미운 입을 순서대로 퍽, 퍽 내리쳤다. , 분노감이 담겨 힘 조절이 미숙했는지 백기가 내려친 입술이 화끈하다. 입술에 짓눌려 약간 찢어졌는지 비릿한 피 맛까지. 정말 되는 일이 없다고 중얼거린 백기의 눈가가 조금 발긋 달아올랐다. 이씨, 아파.

 

*

 

힘없이 제 자리로 돌아온 백기가, 파티션 뒤에서 바이어와 통화를 하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해준이 잘난 옆모습을 빤히 바라본다.

 

눈치도 빠르고 시야도 넓은 해준은 백기가 왔음을 앎에도 쳐다보지 않음이 분명했다. 찢어진 아랫입술이 통통하게 부어 자아내는 미약한 통증이 이제는 입술이 아닌 얼굴 전체, 목덜미에서 슬금슬금 가슴으로 내려가는지 쿵쾅이는 울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서러움에 버릇처럼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 꼬집듯 쥔 부분이 하필이면 찢어져 부어오른 곳이라니. 아야, 참아보려 했지만 뱉어진 신음성에 해준이 버릇처럼 빠르게 고개를 돌려 백기를 바라본다. 터덜거리는 발소리를 들을 때부터 걱정스러움에 돌아가려던 고개를 아직 조금 남은 꽁함으로 애써 잡아뒀던 해준은 눈을 돌리자마자 보이는 백기의 모습에 의자를 박차고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울기 직전의 어린아이의 표정이 딱 그러할까. 눈 꼬리는 동그랗게 쳐져있고 눈썹도 그러한 눈의 모양을 닮듯 내려가 있다. 평소 하얀 피부 때문에 가까이서 보면 핏줄까지 비쳐보였던 투명한 얼굴은 곳곳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었고, 입술은 팅팅 부어 약간의 핏기를 머금고 있었던. 그러니까, 딱 어디서 맞고 울기직전의 어린아이 같았다. 다급하게 전화를 마무리 하고 해준은 성큼성큼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눈가만 붉히고 있는 백기의 손목을 휘어잡고 유리문을 넘어 나갔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다들 업무로 복귀한 복도는 오히려 한산했다. 해준의 강한 손아귀 힘에 휘청 이는 몸을 다잡지도 못하고 끌려오던 백기와 함께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버튼을 누르자 옆에서 울음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장백기씨, 우는 겁니까?”

“....아닙니다.”

 

아니긴, 문장 끝이 전부 뭉개져서 울음이 가득한데. 하아, 절로 튀어나오는 한숨을 뱉어내자 백기의 서러운 울음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이제는 쥐고 있는 백기의 손목을 통해서 들썩이는 움직임까지 전해져온다. , 히끅. 아이고, 딸꾹질까지.

 

장백기씨, 그만 우세요.”

, 히익. , 리님이...”

“-아까 제가 한 말이 많이 속상했습니까?”

 

해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엘리베이터가 15층에 도착한다. 우느라 들썩이는 백기를 끌어 엘리베이터에 오른 해준이 맨 꼭대기 층을 누른다. 대꾸 없이 여전히 히끅이며 울기 바쁜 백기의 얼굴을 살펴보다 엘리베이터 구석의 cctv를 쳐다본다. 며칠 전에 전산 오류로 모든 데이터가 날아간 지라 cctv를 대대적으로 교체한다는 말을 들었으니 저건 그저 사정을 모르는 외부인을 위해 붙여놓은 그저 겉치레 같은 기계일 터였음을 알고 있는 해준이 망설임 없이 백기의 손목을 쥐고 있던 손가락을 내려 백기의 찬 손가락에 얽었다. 평소에도 문득 문득 치밀어 오르는 제 연인을 향한 스킨십의 욕구를 누르느라 매일이 고행의 연속인데, 마침 밀폐된 공간에 단 둘뿐이고, 저들을 바라보는 시선조차 없으니 해준은 한번쯤은 대담해 지기로 했다. 제 시기어린 질투에서 나온 차디찬 말에 얼어붙고, 상처입어 눈물을 쏟는 어린 연인을 달래려 천천히 얽혀오는 해준의 손가락 온기에 속상함도 잠시 안심부터 돼 우는 와중에도 백기는 하아,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

 

 

여전히 달뜬 숨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는 백기의 숙여진 고개를 양손으로 쥐며 해준은 허리를 조금 굽혀 백기와 눈을 마주쳤다. 벌써 뜨끈하게 열이 올라 달아오른 볼 하며, 발긋 부어오른 눈 하며 언제까지고 어린아이 같은 백기의 모습에 해준의 가슴이 조금 철렁였다.

 

 

장백기씨, 뚝 하십시오.

, 어린애. 아닙,니다.”

아직도 우느라 숨도 제대로 조절 못하면서 그렇게 말 할거에요?”

 

 

무뚝뚝한 음성이 백기의 힘없는 항변에 녹아내려 어린아이 달래듯 부드럽게 풀어졌다. 양 볼을 쥐고 있던 너른 손바닥으로 백기의 볼을 슥슥 문질러 달래던 해준이 계속 우느라 지쳐 하-. 뜨거운 숨을 뱉은 백기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댄다. 이런 거로 넘어가려 하냐는 듯 항변이 섞인 밀어냄이 해준의 어깨에서 느껴졌지만, 힘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반항에 결국 입술을 맞붙인 채로 웃음부터 터져 나왔다. , 장백기씨, 그거 밀어내는 거 맞습니까?

 

 

말하느라 달싹이는 입술이 백기의 입술에 닿았다, 떨어졌다 한다. 온기가 멀어졌다가 다가왔다가 하는 간질함에 백기는 해준의 뒤통수를 감싸 안고 냅다 입술을 들이박다시피 붙였다. 아야, 제 터진 입술을 생각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입술에선 또다시 비릿한 향이 난다. 해준은 투정부리듯 해준의 뒤통수의 머리칼을 약하게 잡아당기는 백기를 달래며 혀로 할짝, 입술을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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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메세지 / 박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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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은 사실 핸드폰에 서툴렀다. 물론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진 해외 바이어나, 지방 거래처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핸드폰을 이용한 전화통화가 잦았기에 남들이 보기엔 오히려 핸드폰을 늘 소지하며 다니는 사람으로 비춰졌지만, 조금 더 명확히 말하자면 문자 메세지 같은 경우 말이다. 특히나 저보다 4살이나 어린 애인, 사람들이 표현하기론 청춘같은 신입 장백기와의 메시지는 더욱 그랬다.

 

빠른 화제전환, 손가락에 모터라도 달았는지 보내기가 무섭게 이어지는 장문의 답장도 해준을 난감하게 만들기 충분했지만 그보다 해준을 더욱 두렵게 하는 것은 백기가 메시지 끝마다 보내오는 요상한 그림이었다.

 

[대리님, 오늘 퇴근하고 술 한잔 하실래요? ( ╹ ◡ ╹ ლ)

                                   -장백기 씨]

 

 

.....해준은 멍하니 핸드폰만 바라보다 힐끗 고개를 왼쪽으로 틀었다. 그러자 답장을 기다리는지 핸드폰을 붙잡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가 시선을 느끼고 훽 고개를 튼 백기가 해맑게 웃어 보인다.

...그리고 힐끗 힐끗 제 핸드폰과 해준을 번갈아 바라보는 모양새가 마치 얼른 답장해주세요~!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지라 난감함에 해준은 오랜만에 등이 식은땀으로 젖어가는 걸 느꼈다.

 

 

좋습니다. 장백기씨.”

 

 

회사에서 티내지 말고 공과 사를 구분하며 좋은 연인관계를 이어가자던 해준은, 메시지 끝에 붙인 백기의 이모티콘이 무얼 형상화하는지를 해독하지 못해 결국 대답을 음성으로 툭 뱉어버리곤 핸드폰의 홀드키를 눌렀다. 컴컴해지는 폰 액정에 비친 제 얼굴이 퍽이나 한심해 보였던 지라 핸드폰을 서류 위에 신경질적으로 내려놨다. 그러다 핸드폰을 뒤집어 액정을 바닥 쪽으로 붙여버린 해준이 옆에서 황당함에 입을 벌리고 있는 백기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모니터를 향해 신경질적인 타자 두드리기를 시전했다.

 

*

 

뭐라고?”

그러니까, 그 이상한 표정 같은 거 있잖아. 문자 뒤에 붙이는.”

이상한 표정이라니?”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거.”

 

커피를 호록 마시다 해준이 뱉는 두서없는 말에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는 동식이 퍽이나 답답했는지 해준 답지 않게 제 가슴팍을 퍽퍽 치다, 아까 백기가 보냈던 이모티콘의 모양새를 간신히 생각해내곤 취한 포즈에 동식은 입에 머금은 커피를 주륵, 입술에서 뱉어냈다.

 

손가락을 위로 향하게 만든 어정쩡한 손 모양을 하곤 열심히 손을 휘적이며 이거, 이거말야. 따위를 중얼거리는 해준의 표정이 퍽이나 진지해 동식은 작은 웃음조차 흘리지 못했다.

 

“...강대리야.”

, .”

우선 그 웃긴 포즈부터 풀어줄래? 내가 비위가 조금 약해서.”

 

동식의 말에 팍 얼굴을 구긴 해준이 신경질적으로 탕비실 테이블 위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저를 바라보는 동식의 표정에 대뜸 민망해진 탓이었다. 종이컵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약한 종이가 구깃해지는 걸 느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찬물을 연거푸 들이킨 해준이 씨근거리자 동식은 여전히 놀람에 떨려오는 심장을 다독이며 흐음, 한다.

 

그러니까 니 말은. 그런 이모티콘이 섞인 문자가 올 때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야?”

그래. 사실 무슨 자세인지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

 

투정부리듯 투덜거리는 해준의 모습이 낯설어 동식의 눈이 동그래지지만 금세 즐기며 히죽이는 웃음을 물었다. 그냥 너도 이모티콘 보내면 되지 않아? 할 말 없는데 씹기엔 애매할 때 이모티콘 하나면 분위기도 안 싸늘해지고. 동식의 진지한 답변에 미간에 힘을 약간 푼 해준이 말이 쉽다며 한숨을 푹 내쉰다.

 

이모티콘 분석도 어려운데, 쓴다는 게, 말이나 되?”

, 하긴.”

 

다시금 울컥 하는지 기어이 제 핸드폰을 꺼내 몇 번 액정을 두드리던 해준이 문자 메시지를 다시금 읽어보며 한숨만 푸욱 푸욱 쉬어댄다. 수심 가득한 해준의 옆모습에 놀리려던 걸 그만두고 김대리가 제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툭, 뱉었다.

 

요즘 인터넷에 검색하면 많이 나오던데?”

? 그런 걸 올리는 사람들이 있어?”

, 강대리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한텐 참 좋지 않겠어?”

 

그러니까 한번 검색해봐. 그리고 너를 고민에 빠지게 한 사람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불쌍하게 메시지 자꾸 씹지 말고 가끔은 먼저 보내봐. 깜짝 놀랄걸? 그 말을 마치고 해준의 어깨를 다정하게 토닥이던 -물론 해준은 어깨를 휘적이며 털어냈지만- 동식이 먼저 자리를 떴다. 그 자리에 멀거니 서있던 해준이 무언가 결심한 듯 초록색 검색창을 띄우곤 떠듬 떠듬 검색어를 입력한다.

 

 

*

 

[_

  \\ Λ_Λ

   \( '' ) 장백기씨

    > ⌒

   /  

   /  / \\

   レ    _

  / / 로비에서

  / /|

 ( (

 | |、\

 | 丿 \ ⌒)

 | |  ) /

`)  L만납시다.

-강해준 대리님]

 

, 퇴근 시간이 지나자마자 외투와 가방을 챙겨 먼저 일어선 해준의 뒷모습에 부랴부랴 준비하던 백기가 울리는 핸드폰의 잠금을 풀어낸다. 정신없을 때 울린 진동에 대충 확인하고 뛰어나가려던 백기의 눈이 발신인의 이름과 전혀 매치되지 않는 메시지 내용에 한가득 커진다. , . ?! 바스락 거리며 퇴근 준비를 하던 백기가 저도 모르게 크게 질러낸 짧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 됐지만 너무 놀라면 무서울 수도 있구나. 를 미친 듯이 실감하던 백기가 오소소 돋아오는 소름에 한기까지 느껴가며 어깨를 미친 듯이 문질렀다. 설마 스팸 인걸까. 그래 스팸일 거야. 백기가 급기야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을 무렵 한번 더 징, 진동이 울렸다.

 

[장백기씨.

얼른 서두르십쇼. ㅇㅅㅇ^^^

-강해준 대리님]

 

 

....대리님. 백기의 시야가 아찔해진다.

 

 

  *

캐붕...죄송합니다.....(컥커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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