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렁한 박두부

[해준백기] 분노

단문2015. 2. 2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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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백기/대리백기




명치께부터 스믈스믈 올라오는 불쾌함이 숨 막히게 답답해 백기는 가슴 언저리를 신경질적으로 두드렸다. 이 답답한 통증의 원인이 불분명하다면 속이 안좋다던지, 아니면 피곤해서라던지 등의 판단으로 소화제나 꿀떡 삼켰을테지만 원인이 너무나도 분명한것이 백기의 신경을 더욱 건드는 요소였다. 이게 소위 말하는 잡은 물고기한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라는 걸까.



백기는 얼마전 복사를 위해 간 탕비실에서 신나게 이 '잡은 물고기-먹이 이론' 을 떠들어 대는 석율의 말을 불현듯 기억해냈다.


그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도 못했고, 또 으레 던지는 석율의 실없는 수다거리겠거니 치부해버리고 가볍게 흘려들었는데, 백기는 그때의 저를 찾아가 넥타이를 세게 졸라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런 연애의 이론 쯤으로 떠돌아 다니는 문장을 제가, 그것도 직접 몸으로 뼈저리게 느낄일이 존재하리라곤 생각조차 못했었는데. 백기는 한손에 쥐고있던 볼펜이 빠득 소리를 내며 바들거리는 것도 신경쓰지 못한 채 고개를 작게 틀어 제 오른편을 가로막은 파티션을 바라봤다. 항상 그와 저를 갈라놓던 회색빛의 차디찬, 그리고 어쩐지 한없이 높게만 느껴졌던 원망스럽게도 큰 존재감의 벽이 있다는걸 처음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극상. 하극상이 일어났을겁니다. 이게 없었으면.

잇새로 스읍. 숨을 들이 마시며 백기는 여직 쥐고있던 볼펜을 책상에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졌다. 분명 책상에 부딪히고 도루룩 굴러가는 플라스틱 소재의 볼펜 소리가 들렸을것이었음에도 무심하게 컴퓨터 화면에만 시선을 고정한채 키보드만 두드리고있는 제 사수. 강해준 대리를 백기은 몸을 굳이 뒤로 젖혀가는 노력도 서슴지 않으며 지긋이 쳐다본다. 드드득 당겨진 의자가 내는 소음이 작게 울린다.
끝까지 안보실껍니까? 대리님?



"장백기씨"
"에-네?!"
"일 안합니까"



시선은, 그 놈의 시선은 빌어먹게도 앞으로 고정한 채 무뚝뚝한 '상사'로서의 말이라니. 백기는 치미는 분노에 얼굴이 홧홧해져 신경질적으로 뜨끈한 눈을 짓눌렀다. 진짜 미워. 분노에 뒷목부터 정수리께가 쭈삣 일어서는게 느껴진다. -장백기씨. ...예.



"네. 일 안합니다."
"-네?"
"일 못하겠습니다. 저 잠시...



숨과 함께 목끝에서 간질거리는 분노를 겨우 삼켜낸 백기가 쥐어짜듯 소리를 냈다.



"잠시만 쉬었다 오겠습니다. "



대답을 기다릴 여력도 없어 백기는 말만 툭 뱉어내고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갑작스런 백기의 통보아닌 통보에 그제야 시선을 옮긴 해준의 시야에 백기의 시뻘건 목덜미가 잡힌다.
부끄러움? 부끄러울때 마다 목덜미부터 귀, 얼굴 전체로 붉음이 퍼져나가는 백기를 떠올린 해준이었지만, 그 생각은 곧바로 해준의 머릿속에서 묵살되었다.

백기를 부끄럽게 만들만한 상황은 한가지도 없었을 뿐더러, 저를 힐끗거리며 바라보던 백기의 눈빛이 평소와는 다른 온도였던걸 생각하며 해준은 손가락을 책상에 천천히 두드렸다.


딱,
​따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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