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렁한 박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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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 둘 6

 



백기는 지금 심히 불안했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도망가고픈 심정에 절로 들썩여지는 엉덩이를 간신히 소파에 눌러 앉히고 긴장된 표정으로 리모컨만 꾹꾹 눌러댔다. 그 옆에서 백서가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요플레를 먹다 화면에 스쳐지나가듯 비친 캐릭터를 용케 보고는 팔에 매달려 뽀로로를 신나게 외쳐대고 있었다. 평소라면 백서의 재미난 반응을 보려 일부러 천천히 놀려대다가 울기 직전인 백서에게 선심 쓰듯 채널을 돌려 줬을 백기가 심란한 마음에 한숨만 푹 쉬며 만화채널로 돌린 뒤 소파로 풀썩 몸을 뉘였다. 아빠가 이리 심란한걸 아는지 모르는지 와아아! 하며 들썩 들썩 뽀로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백서가 얄미워 괜히 백서의 손에 아슬아슬하게 쥐여져 있는 요플레 통을 낚아채 그대로 후룩 각도를 기울여 마셔버렸다. 신나서 엉덩이를 흔들던 백서가 다급하게 손을 뻗어왔지만 이미 텅 비어버린 요플레 통만 건넨 백기의 눈에 당혹감에 아빠와 빈 통만 번갈아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 보였다.

 


아빠, 이거 없어요.”

, 아빠도 먹고 싶어서 먹었어.”

“...백서 건데.”

백서 어제까지 아야 했지요? 그렇게 차가운 거 먹으면 또 아야, 한다?”

히잉.”


 

불만스레 바라보긴 하지만 맑디맑은 뽀로로의 인사말이 들려오자 요플레의 상실은 금방 잊고 바닥에 앉아서 화면에 열중하는 백서의 뒷머리를 슥 쓰다듬던 백기의 눈이 다시 한 번 벽에 걸린 동그란 시계로 향한다.


오후 1250. 오겠다고 한 시간에서 대략 10분정도 남은 시간이지만 백기는 마음의 준비를 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제 시간에 딱 맞춰 오는 일이란 건 강해준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출근시간도 늘 10분정도 일찍 오고, 점심시간이 끝나는 시간보다 10분정도 먼저 들어와 양치와 손까지 깨끗하게 마친 뒤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는 해준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 떠올라 백기는 불안한 듯 소파에서 일어났다. 자꾸만 시선이 부엌 싱크대며 거실 테이블 위, 소파 위에서 바닥으로 향한다. 혹시나 지저분한 건 없나 다시 한 번 눈으로 점검하던 백기가 갑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간 뒤 손에 쥐고 나온 건 탈취제였다.


딱히 말로 지적을 하지 않았어도 백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늘상 석율과 함께 갖는 흡연타임에서 옷 곳곳에 배인 담배냄새를 해준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별다른 표현이 없는 사람이라 눈치도 한참 뒤에나 챈 저를 얼마나 자책했던가.


꼼꼼하게 고른 향이 아니라 장을 보다가 탈취제란 단어만 보고 아무 통이나 집어넣은 게 마음에 걸렸지만 콤콤한 먼지 냄새보단 낫겠다 싶어 백기는 백서가 있는 방향을 피해 공중에 칙칙 몇 번이고 분사했다. 살짝 내려앉은 흰 분사물이 사라지고 공기 중에 차오른 향기는 다행히도 특이한 향은 아니었다. 너무 강한 향이었으면 지독하다 생각해 역효과이지 않을까 마음에 걸렸을 텐데 살짝 나는 꽃향기가 만족스러워 백기가 웃음 지으려는 순간 영롱한 차임벨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과거 늦잠을 자 학교로 전력질주 하던 와중 교문을 통과하기 직전 들렸던 종소리도, 수능시험장에서 십분 남았다고 알려주는 시험관들의 냉철한 목소리도, 첫 면접장에서 제 차례라 알려주던 냉정한 목소리를 들었을 때도, 그 어떠한 순간도 지금 순간만큼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지 못할 것이라 결론 내리며 백기는 탈취제를 다급히 방 안으로 던져 넣고는 현관으로 달려갔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임에도 어쩜 이리 심장이 떨어질 것 같을까.


백기가 현관 앞에 서서 밍기적 거리느라 문이 열리지 않음에도 해준은 다시 한 번 더 벨을 눌러 독촉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현관문만 응시하며 열리길 기다릴 뿐이었다.출발하기 전에 한 전화로 백기가 집에 있다는 사실은 확인 했으니 괜히 재촉할 것 없었다. 아이를 살피는 지도 모르지. 해준이 고개를 숙여 제 발끝을 잠시 응시하는 동안 도어 록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백기의 상기된 얼굴이 빼꼼 보였다.


 

“...대리님, 오셨습니까?”

, 쉬는 날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며 조금 비껴선 백기를 스쳐 현관으로 들어선 해준이 신발을 벗느라 고개를 조금 숙인 순간에 말캉한 촉감이 허벅지에서 느껴져 흠칫, 티나지 않게 몸을 떨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들자 바로 눈앞에 보이는 동그란 두상과 포근해 보이는 머리칼. 저를 말똥말똥한 눈으로 바라보며 작은 손아귀로 해준의 옷가지를 한 번 더 단단히 잡아오는 아이. 문을 닫고 막 옆으로 다가온 백기가 놀라 기함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를 잡고 끌어당기려는 걸 해준이 손짓으로 막으며 아이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런 표정은 처음 본다는 듯 제 볼을 찔러오는 경악에 가까운 백기의 시선이 느껴졌음에도 해준은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여전히 신발은 벗지 못한 상태였음에도.

 


아저씨다.”

안녕? 이름이 뭐야?”

나는 장백서 에요. 아저씨는요?”

강해준. 아가, 아저씨 신발 벗고 들어가서 이야기할까?”

네에.”

 


착하네, 해준의 말에 잡았던 옷에서 손을 떼고 또닥또닥 거실을 향해 걸어가는 백서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린 해준의 목소리가 한없이 다정해 백기는 괜히 뒷목이 쭈뼛 서는 게 느껴졌다. 저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아이를 대하는 강해준은 백기에게 참으로 낯선 이였기에 밀려오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해 백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신발을 벗고 그런 백기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 해준의 묘한 눈빛에 퍼뜩 정신을 차린 백기가 다급하게 뒤를 따랐다.

 


대리님, 커피 괜찮으세요?”

, . 부탁해요.”

 


건성으로 대답한 해준은 부엌으로 들어가는 백기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소파 밑바닥에 앉아 뽀로로를 보며 고개를 흔들고 있던 백서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저에게 다가오는 해준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던 백서가 빙긋, 크게 웃고는 제 옆 바닥을 작은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여기 앉으라 종용했다.


제 아이가 저리도 낯을 가리지 않았던가. 당황스러움에 부엌에서 커피를 타던 백기가 혀를 깨물 뻔한 아찔한 상황 속에서도 해준은 침착하고 다정했다. 소름 돋을 정도로. 옆에 앉을까? 바닥은커녕 소파도 재질과 안락함을 따져가며 앉을 것 같던 해준이 백서가 두드린 딱딱한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투박한 손길이 아닌 천천히 부드럽고 상냥하게 쓰다듬어가는 손이 좋았는지 백서가 다시 한 번 히죽 웃곤 엉덩이를 끌어 해준과 조금 더 밀착해 앉았다. 부엌에서 보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끓어오른 뜨거운 물에 커피가루를 녹이던 백기가 그 낯선 모습에 괜히 근질거려 오는 뒷목을 북북 긁은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그림이 아닐 수 없지.

 


 

*

 


아니라니까.”

맞는 데에…….”

아니야. 백서 몰랐어?”

“..... 정말요?”

, 정말이지. 로이가 제일 힘이 세.”

“...아닌데, 폴리가 제일 세다고 그랬는데.”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무얼 그리 토론하나 했더니 백서가 뽀로로 만큼이나 좋아하는 로보카 폴리 주인공중 누가 더 센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그게 중요해? 해준과 백서가 진지하게 토론의 장을 만들고 있는 곳의 열기는 너무나 뜨거워 백기는 피하듯 소파위로 몸을 올려 앉았다.손에 든 커피에서 펄펄 나던 김이 수그러들 만큼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백서도 해준도 제 앞에 놓인 요구르트와 커피는 입도 대지 않은 채였다.

 


저기, 다들 마실 것 좀 마시고 하시죠.”

 


그제야 백서가 이야기를 나누느라 발갛게 물든 볼을 하고선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으려 한다. 자꾸만 헛손질을 하며 낑낑거리기에 백기가 손을 뻗으려는 순간 해준이 백서가 빨대를 쥔 손 위를 겹쳐 잡곤 차근차근 일러주기 시작했다.

 


너무 세게 하면 빨대가 휘어지니까 이렇게. 천천히.”

와아아, 아저씨 잘한다.”


 

해준을 존경스럽단 표정으로 바라본 백서가 방긋 웃으며 요구르트를 입에 물었다. 그저 해주는 것이 아니라 능숙하게 아이 스스로 할 수 있게끔 지도하는 해준의 능력이 감탄스러워 백기는 멍하니 해준의 단정한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다시 백서가 만화에 빠져들자 해준이 아이의 뒷머리를 슥 가볍게 쓰다듬고 몸을 일으켜 백기 옆자리에 앉았다. 무게감에 약간 소파가 꺼지고 사무실 옆자리여도 파티션으로 나눠진 꽤나 물리적 정신적 신체적으로 거리감이 있는 두 사람으로써는 회식 때 옆자리에 앉은 것 이후로 가장 가까운 거리였고,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백기의 몸이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했다.펄떡이는 심장을 애써 잡아 누르며 백기가 어제부터 궁금했던 물음을 꺼냈다.

 


“-대리님……. 그런데 갑자기 저희 집엔 왜..”

사수가 돼서 갑자기 조퇴한 부사수가 걱정돼서 온 거라고 치죠.”

“..., ...?”

그리고 꽤나 놀랐습니다.”

?”

장백기씨한테 아이가 있다는 거요.”


 

내내 멍하게 되묻기만 하던 백기의 목소리가 딱 멎었다. 그제야 제가 어떤 폭탄 발언을 했는지 깨달은 백기의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그래, 맞다.


백서가 아프단 충격에 제가 사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이제야 깨닫다니.


어젯밤 전화에서는 해준의 갑작스런 방문 소식에 벙찌고, 오늘 아침에는 부산스럽게 청소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해준이 방문 후에 자연스럽게 백서와 놀아주는 모습을 보고 해준의 색다른 모습에 당황하며 아무생각 없이 커피나 홀짝이고 있던 건 저였다.

생각해보면 해준은 또 얼마나 황당했을까. 갑작스레 가방을 쥐고 회사 밖으로 뛰쳐나가려 한 부사수. 그 어이없는 행동에 무슨 짓이냐며 다그치는 사수 앞에서 아이처럼 울며 제 아이를 거론한 부사수. 생각해보니 눈물이 가득 차 흐려진 시야 속에서도 보였던 해준의 당황한 표정은 여전히 선명하게 뇌리에 박혀있었다. 그 전까진 제법 홍조를 매달고 있던 백기가 급격히 하얗게 질려가는 걸 무심한 눈으로 본 해준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꺼냈다.

 


,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 대리님.”

이곳저곳에 떠들고 다닐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장백기씨?”

“..., 그건 아닙니다.”

말했듯이 놀라긴 했습니다. 하지만 사정이 있겠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심하게도 목이 멨다. 자꾸만 목구멍 너머에서 꾸역꾸역 올라오는 감정을 눌러 담느라 백기는 애먼 침이나 두어 번 꿀꺽 꿀꺽 삼켜대고 있었다. 순식간에 서먹해진 분위기를 깬 건 어느새 끝난 만화를 보며 아쉬워하던 백서였다.

 


아빠아, 배고파요.”

“-, 어어?”

그러고 보니 벌써 2시가 다 되어가네요.”

백서 배고파? 그럼 간단하게……. , 대리님은 식사 하셨어요?”

안 먹긴 했는데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손님이신데……. 혹시 핫케이크 좋아하세요?”

가리는 건 없습니다.”

 


해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백기가 부엌으로 향하자 백서가 졸졸 뒤를 따른다. 아빠, 백서 딸기도 먹고 싶어요. 졸졸 따르는 아이의 타박이는 발소리가 들리고 그를 눈으로 쫒던 해준이 몸을 일으켜 뒤를 따랐다. 싱크대에서 손을 씻으며 백서가 내민 빈 요구르트 통을 받아 분리수거 통에 넣던 백기가 해준이 다가오는 걸 보고 눈이 조금 커졌다.

 


, 대리님. 앉아계셔도 되는데…….”

뭐 도와주지 않아도 됩니까?”

, 괜찮습.”

아빠! 백서가 도와줄래요.”

 


괜찮다며 거절하려던 백기의 말은 그대로 백서의 우렁찬 목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씩씩하게 발표하듯 손까지 번쩍 들고 눈을 빛내는 아들을 보고 차마 괜찮다는 말을 뱉기 어려워 백기는 작은 한숨과 함께 재료를 식탁으로 하나둘 옮겼다. 신난 듯 식탁의자로 향하며 조잘거리는 백서가 이끄는 손길에 해준도 백서의 옆 의자에 앉았고 백기는 적당한 무게감이 있는 유리 볼을 백서의 앞으로 놓은 뒤 계란을 볼 모서리에 두드려 깼다. 두 개의 계란이 볼에 담기고 몇 번 해봤는지 능숙하게 거품기를 쥔 백서가 계란을 휘적휘적 젓기 시작했다.

 


흘리지 않게 살살 해야 해. 알지?”

네에!”


 

대답은 늘 씩씩하지. 피식 웃은 백기가 냉장고로 가 우유를 꺼내왔다. 사놓은 지 이틀정도 되었는데 벌써 절반정도밖에 남지 않은 병 우유에 백기가 양을 가늠한다. 한 컵 정도는 반죽에 넣고, 핫케이크 먹을 때 마셔야하니까, 세 컵 정도는 나오겠지. 백서가 조심스레 휘저은 계란물이 노랗게 물들자 백기가 우유를 한 컵 부었다.

 


백서 또 조심해서 섞어봐.”

네에!”


 

백서에게 주의를 주고 우유병을 식탁에 내려놓는 순간 부스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집게로 집어놓은 핫케이크 봉지를 열고 내용을 꼼꼼히 살피던 해준이 백서가 휘젓고 있던 계란과 우유가 적당히 섞이자 빈 컵에 가루를 조심스레 붓는다. 조금의 흘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컵과 가루를 신중한 눈으로 바라보는 해준의 얼굴은 사무실에서 서류를 볼 때와 닮아있었다.


컵 윗부분까지 가루를 가득 채웠음에도 주변은 한없이 깨끗하다. 제법 뿌듯한 표정으로 컵을 바라보는 해준의 표정에 백기는 입술 안쪽을 깨물어 간신히 웃음을 참아냈다. 그렇게 해준이 신중히 담은 가루 한 컵, 두 컵을 볼에 붓고 백서와 함께 저어 반죽을 만든 백기가 잠시 주변을 정리하는 동안 해준이 한손으론 반죽이 담긴 볼, 한손으론 백서의 손을 잡고 가스레인지 앞에 섰다. 식탁 주변에 튄 반죽들을 행주로 훔치던 백기가 다급하게 말리려 했지만 해준은 이미 프라이팬을 꺼내 인덕션 위에 올려둔 뒤 불을 킨 뒤였다. 인덕션이 붉게 가열되고 백기가 미리 꺼내두었던 버터를 조금 떠 프라이팬에 올리자 칙, 소리와 함께 향긋한 버터향이 코를 찔렀다.

 


우와아, 아저씨 요리사 같다!”

뜨거우니까 백서 구경하려면 조금 떨어져서 해야 해, 알겠지?”

네에!”

 


해준의 말에 고분고분 다리를 뒤로 물린 백서가 까치발을 들어 프라이팬을 살피느라 애를 쓴다. 코팅하듯 연노란 빛의 버터물이 프라이팬 바닥을 감싸고 해준이 국자를 이용해 반죽을 예쁜 동그라미 모양으로 올렸다. 대리님, 제가 하겠습니다. 뒤늦게 해준의 뒤로 다가와 안절부절 발을 동동거리는 백기에게 괜찮습니다, 단호한 말만 던진 채 해준은 뒤집개를 이용해서 반죽을 뒤집었다.


딱 좋은 주황색과 갈색 사이의 반죽. 도톰하게 익은 핫케이크를 접시에 옮겨 담는 해준은 조금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일련의 과정들을 계속 행했다.백서 것은 크기까지 조절해서 작고 예쁜 동그라미를 만들어준 해준이 마지막으로 두세층으로 쌓인 핫케이크 위에 버터조각 조금과 메이플 시럽을 올렸다. 따끈하고 폭신한 핫케이크를 보고 백서가 작은 손으로 열심히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

 


와아, 아저씨! 우리 아빠보다 잘해요!”

“....장백서...!”


 

식탁 위에 포크와 나이프를 놓고, 컵에 우유를 따르던 백기가 장난스럽게 으스스한 목소리를 꾸며내 백서를 부르자 다시 한 번 함박웃음을 지은 아이가 인덕션이 꺼졌나 꼼꼼히 확인하고 접시를 챙겨 돌아선 해준의 다리에 매달렸다. 조금 주춤하긴 했지만 접시를 들지 않은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곤 어서 가서 먹어야지. 백서 배고프다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를 도닥였다. 해준의 말에 후닥 식탁으로 달려가 제 의자에 앉은 백서가 먼저 컵을 들어 우유를 마신다.


그리곤 해준이 놔준 접시에 담긴 잊지 않고 딸기까지 올린 핫케이크를 볼까지 붉히며 바라보는 게 귀여워서 웃은 백기가 나이프로 백서가 먹기 좋게 핫케이크를 자른 뒤 포크로 한 조각 찍어 입에 넣어줬다. 빵빵한 볼을 오물거리던 백서가 히죽 웃는 모습을 막 식탁에 앉은 해준이 보고 만족스럽게 웃음 짓는다.

 


대리님, 감사합니다. 제가 대접해야 하는데..”

간단한 건데요 뭐. 장백기씨도 어서 먹어요.”

.”

 


그제야 망설이던 백기도 핫케이크를 조심스레 먹는다. 사르르 녹는 맛. 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백기의 입 꼬리가 움찔 움찔 떨리는 걸 혹여나 민망해할까 못 본 채 하며 해준은 열심히 먹느라 시럽이 묻은 백서의 볼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막 휴지를 내밀려는 백기보다 그 손가락을 쭉 빤 해준의 행동이 빨랐다. 대리님이 맞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오늘 의외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탓에 백기는 또다시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저렇게 남의 피부에 닿은 시럽을 휴지에 닦는 게 아니라 빨아 먹는다? 아무리 아이의 것이라 해도? 충격에 침을 꿀꺽 삼킨 백기는 강대리님이 아이를 (의외로) 좋아하시는구나.’ 하고 저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린 뒤 핫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부엌이며 식탁에 넘쳐흐르는 향기는 달콤했고, 백서는 미열도 없이 깨끗하게 감기가 나았으며, 엄청난 부담을 가져다 준 해준의 방문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꽤나 예민한 심성을 가진 백기에게 어색한 듯 분명하게 몰아치는 따듯함에 나른하게 기분이 풀린 백기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따듯한 오후였다.

 



**

5편을 올린지 한달이 넘어가서야 6편을 가져오다니 흑흑(쭈글

아이에게 다정한 강대리님의 의외의 모습에 내내 당황하는 백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