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렁한 박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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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 아래위턱의 영구치열 치아 중 가장 안쪽에 나오는 세 번째 큰 어금니. 백기는 푸른 컴퓨터 화면이 보여주는 사랑니의 정의를 읽다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눌러 그 창을 꺼버렸다. 위치는 지금 이런 설명 없이도 온몸으로 느끼고 있으니까 그딴 거 말고 제발 이 통증이 없어지는 방법 좀!


욱신 또다시 아릿한 통증이 백기의 어금니를 찔러왔다. 치통 따윈 생전 느낄 일 없을 거라 자부해왔던 건치의 상징 장백기였는데, -사실 건치인 것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것이었지만- 며칠 전부터 미친 듯이 쑤셔오는 사랑니의 고통에 매일 밤 눈물 콧물 쏙 빼느라 백기는 요 며칠간 밤에 제대로 잠들 수가 없었다. 쓰으읍, 아파. 눈꼬리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않은 채 마우스 휠을 굴려 내려 건강 백과를 클릭했다. 그래, 건강 백과라면 내 아픔을 해소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은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백기는 어질어질한 눈을 한번 비볐다.


 ‘…. 큰 어금니 중 세 번째 위치인 제3대구치를 말하는데 구강 내에 제일 늦게 나오는 치아이다. 보통 사춘기 이후 17~25세 무렵에 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는 이성(異性)에 대한 호기심이 많을 때며 특히, 새로 어금니가 날 때 마치 첫사랑을 앓듯이 아프다고 하여 “사랑니”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또한,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시기에 나온다고 하여…….’


욱신! 아, 방금 이건. 진, 짜 아팠다. 바늘처럼 날카롭진 않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뜨개질바늘같이 끝이 뭉뚝한 것으로 어금니를 사정없이 찔러오는 듯한 둔한 격통에 백기가 황급히 볼을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볼 살이 밀려 입술이 돌아갈 정도로 강하게 눌렀음에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심해지는 치통에 기어이 입안의 여린 살을 짓씹은 백기가 신음했다. 맞닿은 어금니를 여러 번 꽉꽉 물어도 기존의 끔찍한 치통을 누르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딴 게 첫사랑의 통증이라면 백기 저는 평생 첫사랑을 하지 않으리라. 전원을 끌힘조차 없어 대충 화면만 끈 백기가 비척비척 침대로 걸어가 그대로 몸을 눕혔다. 싸구려 매트리스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이젠 한기까지 도는 몸을 다급히 두꺼운 이불로 감싸며 백기는 절로 나오는 앓는 소리를 참지 않았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비척거리며 들린 약국에서 무조건 잘 드는, 효과 좋은 진통제를 달라며 울먹인 백기가 용법도, 용량조차 보지 않은 채 손에 잡히는 대로 씹어 삼켜낸 약은 이빨의 통증을 가라앉혀주긴 커녕 빈속을 자극해 구토감만 유발할 뿐이었다. 깨 있어 봐야 고통에 괴로워할 뿐이란 게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었다. 제발, 제발 잠들어 버리자. 억지로 눈을 꾹 눌러 감는다. 속눈썹이 눈꺼풀에 눌려 잔뜩 구겨지는 것 같았지만 알 바 아니고. 이불 속에 잔뜩 웅크린 몸을 숨기며 백기가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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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페이지가 아닙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두려움에 풀려버릴 것만 같은 다리를 애써 다잡으며 백기는 가까스로 병원 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백기는 병원이라면 질색을 하는 부류 중 하나였다. 감기는 약국에서 약만 타 먹으며 버텼고, 주사는 꼭 맞아야 하는 필수 예방접종이 아니면 아예 맞아야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다. 워낙 티를 내지 않는 탓에 주변 사람들은 백기가 병원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어린아이였을 때도 묘한 자존심만 세서 두려움에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도 엄마에게 끝까지 괜찮다고, 무섭지 않다고 말하며 버텼단 말을 듣긴 했었다. 어렸을 때는 치기어린 마음에 버티기라도 했지, 어른이 되어서 병원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으면 좋으련만 공포심을 태연함으로 가장하는 방법에만 능숙해졌으니.


 아플 때도 미련하게 상비약만 먹으며 버티는 백기를 한심스럽게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이 눈앞을 스쳐 갔다. 그래도 무서운 걸 어쩌랴. 내쉬는 한숨에는 깊은 고뇌와 두려움이 서려 있었지만 벌써 며칠 내내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느꼈던 괴로움의 크기가 조금 더 커 백기는 용기 내어 한 걸음을 뗀다. 위잉, 별다른 소음 없이 부드럽게 열리는 진동문의 예민한 센서를 원망스럽게 바라본 백기는, 문 열리는 소리에 일어난 간호사와 눈을 마주치고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그래도 구면이라고 어쩐지 반가움마저 드는 건 서늘한 공기가 가득한 치과 내에서 그나마 저를 반겨줄 따듯한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장백기씨, 맞으시죠? 일찍 오셨네요?”

“아, 네. 조금 서둘러 와서….”

“10분 정도 뒤에 수술 끝나시니까 그때 선생님과 상담하시러 들어가시면 될 것 같아요. “

“아, 네 감사합니다.”



일찍 오긴 한 모양이었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자 약속한 시각보다 약 30분 정도 앞선 시간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회사에서 일을 하는 동안의 치통은 견딜수 있을 만한 미미한 것이어서 백기는 오랜만에 제법 즐거워하고 있었다. 


근데 무슨 장난인지. 퇴근하고 치과로 걸어오는 그 짧은 거리부터 슬슬 이빨이 욱신거려 오기 시작하더니 접수를 마치고 대기하려 의자에 앉아있는 이 순간부터 긴장감이 차올라 배도 꼬일 듯 욱신거리고 있었다. 마치 몽둥이질이 쏟아지듯, 목구멍 바로 옆에 있는 사랑니 자리가 두근두근 떨리며 진동하고 있어 백기는 덜컥 겁을 집어삼켰다. 표현력이 부족한 백기 저로서는 이 통증의 정도를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견디기 힘들 정도란 건 확신할 수 있었다. 밀려드는 통증에 안절부절못하며 몸을 들썩이고 다리를 구르길 몇 분. 마스크를 낀 서늘한 얼굴이 수술실에서 나타났다. 피곤한 듯 손목을 돌리며 한숨을 쉬던 이가 백기를 보고 마스크를 벗어 꾸벅 인사를 건넸다. 



“일찍 오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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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른전 (7/19일)에 나오는 해준백기 소설본 [어디까지나 치료입니다] 

샘플입니다! 



*예약폼

현장수령 http://me2.do/xin6irLw 

통판 http://me2.do/FUcet9V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