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준백기] 우리 아빠 둘 5
우리 아빠 둘 5
양 손바닥에 파묻힌 고개가 들리기보다 해준이 한 번 더 꺼낸 재촉의 말이 빨랐다.
“장백기씨, 무슨 일 있습니까?”
“아닙, 아닙니…….”
고개를 도리질 치던 백기가 조금 젖은 눈을 들었다. 눈썹은 한없이 쳐져있고 눈은 그렁그렁 하면서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입 꼬리를 억지로 올리려는 모습에 해준이 미간을 좁혔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말끝이 약간 뭉개진 목소리로 부정의 말을 뱉은 백기가 손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던 서류가방을 다시 책상 서랍 앞에 놓으며 반만 걸쳐져 있던 자켓도 벗어 의자에 걸려는 걸 해준이 저지했다.
“장백기씨, 저 좀 봅시다.”
“...네.”
누가 봐도 무슨 일 있다 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을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 입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백기를 불러낸 해준이 옥상으로 향했다. 뒤에서 느릿하게 따라오는 백기가 걸음을 따라잡기 힘들까 보폭을 조금씩 줄여가며 엘리베이터를 잡는 해준의 손끝이 초조함에 차가워진다.
*
“아무것도 아닌 얼굴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깐 제가 잠시,”
“말 하세요 장백기씨. 아까 전화 받고 그런 거죠? 무슨 전화 길래 그럽니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장백기씨, 그런 기분상태로 일이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고집부리다가 일 크게 터뜨리려 그래요?”
“…….”
발끈한 듯 주먹을 꼭 쥐며 반항적인 눈빛이 날아든다. 그래도 이전처럼 곧바로 날카로운 말을 쏟아 내거나 뛰쳐나가지는 않는 걸 보니 시간이 흐른 동안 조금은 성장했나 싶기도 하고. 꼭 쥔 주먹을 몇 번 떨던 백기가 흘끗 제 손목의 시계를 보더니 눈이 크게 뜨인다. 아차하며 얼굴 가득 낭패감이 퍼지는 걸 본 해준은 선심 쓰듯 먼저 물꼬를 터주기로 했다.
“아까 보니 어디 가려고 했죠?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그냥 가는 건 용납 못합니다 장백기씨. 이유를 말하고 가세요.”
“.....하아.”
내뱉은 한숨 뒤로 망설이듯 눈을 굴려대던 백기가 꾸역꾸역 토해낸 내용은 꽤나 예상치 못했던 거였기에 감정기복이 크지 않은 해준 조차 너무 놀라 끼고 있던 팔짱이 삐끗 하며 슬쩍 풀렸다.
“아이가, 아픕..니다.”
“....네?”
타인이 저에게 하는 말을 놓쳐서 되물은 적은 없었다. 지금 것도 놓쳐서 물은 것은 아니었지만. 도리어 너무 분명하게 귀에 파고든 말이 믿기지 않는 것이었음에 놀란 탄식이나 의문 섞인 감탄사에 가까웠다. 장백기의 입에서 나올 리 없는, 아니 없을 말이 튀어나오자 해준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게 백기의 개인정보가 적혀있던 서류라니. 분명히 나이는 26이고, 결혼 유무는....당연히 살피지 않았다. 나이나 스펙조차 관심이 생기지 않아 흘깃 곁눈질만 하고 서랍에 넣어뒀는데. 결혼유무 따위는 당연히 살피지 않았겠지. 요즘이 어느 시대인데 설마 26살이니 결혼 은 당연히 안했겠지 라고 생각한 저가 퍽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잠깐. 아이라고 했지 제 아들이라니, 딸이라느니 하는 주어가 분명치 않았다. 그 아이가 사촌일수도 있는 거고. 해준은 조금씩 말라오는 목을 큼, 소리 내어 가다듬곤 되물었다.
“...아이, 아이라니요?”
“제 아들이 아프다고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 맞네. 장백기 아들. 너무 놀라서 평소보다 느리게 회전되는 머리를 굴리던 해준이 깜짝 놀라 백기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아이가 아픈데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겁니까! 갑작스레 쏟아지는 해준의 높은 목소리에 백기가 해준에게 끌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와중에도 놀라 눈을 깜빡였다. 아니, 대리님이 여기로 데리고 오신 겁니다만. 물론 전하지 못한 말끝이 목구멍에서 간질간질하게 울렸다.
“아,니. 그렇지만 오늘까지 마무리 해야 하는 서류가..”
“장백기씨, 아이가 아프다면서요. 서류가 중요합니까?”
“하지만, 오늘 팀 전체가 야근인데 어떻게 제가,”
“아이가 우선이지요.”
순식간에 15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해준은 백기에게 잠시 기다리라 이른 뒤 백기의 자리에서 옷과 가방을 챙겼다. 그 사이 문이 닫히지 않도록 열림 버튼만 꾹 누르며 안절부절 하고 있던 백기에게 짐을 건네고는 해준이 버튼을 눌렀다.
“곁에 있을 수 있을 때를 놓치지 마세요. 장백기씨.”
과장님껜 제가 말씀드릴 테니 얼른 가십시오. 문이 닫히는 사이로 어느새 사라져 텅 비어있는 복도를 바라보는 백기가 눈을 깜빡였다.고마운 마음이 차오르다 못해 넘쳐 흘러내리듯 묘한 기분에 가만히 손바닥으로 가슴을 꾹 눌렀다. ...고맙다고 말씀도 못 드렸는데.
*
묘한 기분에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이내 1층에 도착한 백기는 정신을 차리고 후다닥 로비를 가로질러 뛰었다. 구둣발이 바닥에 부딪혀 나는 거슬리는 소리도, 쭐떡 벗겨질 번한 가죽구두도 신경 쓰지 않고 막 유리문을 밀고 나간 백기는 다행히도 막 사람이 내린 빈 택시를 잡아 탈수 있었다. 어린이집 주소를 부른 뒤 팔뚝에 걸려있는 자켓을 잘 추슬러 안으며 막혀오는 숨을 몰아쉬었다. 설마 말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강해준에게.
의식적으로 백기는 제 결혼과 아이의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하는 것을 꺼려왔다. 왼손가락에 반지를 끼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이들도 눈치 채지 못할 것도 당연했지만 백기도 구태여 먼저 말하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아이의 존재나 부인의 존재를 부끄럽다는 이유로 숨기고 싶어 하는 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사실을 밝히려면 필연적으로 해야 할 부인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참으로 부담스러웠다. 여전히 백기에겐 가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픔이자 상처였기에 그랬고, 참으로 안쓰럽고 불쌍한 그녀였기에 더 그랬다. 아직도 밤에 눈을 감으면 가느다란 팔목이 떠올랐고, 아픔에 까무룩 정신을 잃는 와중에도 제 손가락을 잡아오던 흰 손이 안타까웠으며, 어색하게 깎은 짧은 머리를 하곤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망설이며 현관을 나서지 못했던 저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환하게 웃어줬던 그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기에.
꼭 아내의 문제뿐만이 아니더라도 아이에겐 세상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큰 존재감인 엄마의 부재를 그 어린아이가 무얼 어떻게 받아들였기에 아무런 물음도 꺼내지 않는지. 여전히 백기의 눈엔 어린 아이임에도 한없이 커 보이기만 하는 의젓한 모습이며 곧은 눈을 한 백서를 보는 것 또한 백기에겐 크나큰 마음의 짐이었다. 그래서 백서를 키우기로 결심한 거였고.
어머니는 백기가 온전히 아이를 키울 수 있을 때까지 백서를 보살펴 주시겠다 했지만 백기는 고집을 부렸다. 단순히 키우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키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이의 양육이 얼마나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니? 천천히 다정하게 설명을 하던 제 어미의 목소리가 굳건한 백기의 고집에 낮게 가라앉아질 때쯤, 제 아이잖아요. 조용히 말을 꺼낸 백기의 얼굴을 가만히 살피다 말없이 손을 잡아주던 그날의 주름진 손도 기억한다.
목적지에 다다른 택시아저씨의 도착을 알리는 조근거리는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백기는 분명 지금 제가 몸을 담은 곳이 어딘지조차 분간하지 못한 채 소리 내어 엉엉 울어버렸겠지. 씁쓸하게 웃으며 돈을 지불한 백기가 어린이집으로 다급한 걸음을 옮겼다. 현관 앞에서 호출버튼을 누르고 조금 기다리자 백서의 담임선생님이 나와 백기를 반겼다.
“아버님, 오셨어요?”
“네, 늦어서 죄송합니다.…….백서는 어떤가요?”
“물수건으로 몸 닦아줘서 열이 조금 내리긴 했는데 자꾸만 울며 아빠를 찾아서요. 이러다간 또 금방 열이 오를 것 같아요.”
“바로 데려가겠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원을 하고, 부모를 기다리는 몇몇 아이들만 얌전히 블록을 쌓으며 놀고 있는 교실이어서 백기는 담임선생님의 뒤를 따라 조용히 교실 안에 걸음 할 수 있었다. 놀이 공간 한쪽에 쌓인 매트위에 누워있는 백서의 얼굴이 붉은 게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도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 백기는 가슴이 아릿하게 저려오는 걸 느꼈다. 이마를 덮은 물수건에 눈이 거의 가려진 상태로 누워 숨만 몰아쉬던 백서가 푹신한 매트에 울리듯 나는 발소리에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아빠를 발견한 백서의 눈에 금방 눈물이 잔뜩 차올랐다. 이불을 제 몸에서 치우고 멀리 밀어내려다 아픈 탓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이 짜증나는지 히잉, 하곤 누운 자세 그대로 두 팔을 앞으로 뻗어온다. 허리를 굽혀 백서의 팔을 제 목에 감게 하곤 등허리에 손을 단단히 감아 품에 안으며 몸을 일으켰다. 담임선생님이 이불로 백서의 몸을 꽁꽁 감싸 안아주는 걸 틈을 벌려 도운 백기가 꾸벅 인사를 하곤 천천히 밖으로 걸음 했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아하니 서둘러 가면 원 바로 맞은편에 있는 소아과에서 진료도 받을 수 있겠다 싶어 백기가 걸음을 재촉한다. 혹여나 강하게 흔들리면 열이 잔뜩 오른 아이가 어지러움에 힘들어 할까봐 중간정도의 보폭을 유지하던 백기는 자꾸만 더 세게 목을 감아오며 칭얼거리는 아이의 등허리부근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한 손에 들린 자켓과 서류가방 탓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 백기는 가슴에 볼 부근을 대고 있는 아이의 후끈하게 열이 오른 정수리에 입술을 여러 번 내렸다.
*
“다행히 독감은 아니고 단순 열 감기네요. 약 처방해 드릴 테니 시간마다 먹여주세요.”
“네, 네…….감사합니다.”
“놀라셨죠? 아이가 아파서.”
.....네. 말끝을 흐리지만 의중을 알아챈 듯 안쓰럽게 바라보는 의사 선생님의 눈빛을 애써 피하며 백기는 진찰대 위에 누워있는 아이를 바라본다. 백기를 닮아 햐앟던 얼굴이 열이 올라 곳곳에 붉은 열꽃이 피었고, 아픔을 참으려 깨물었는지 퉁퉁 부어 잔뜩 상처가 난 입술하며. 자꾸만 아이와 꼭 닮은 한 사람이 떠올라서 백기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꾹, 붉게 충혈 되어 있던 눈을 닫은 백기가 힘을 주어 몇 번이나 깜빡이다 눈을 떴을 때 제 앞으로 내밀어지는 흰 종이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눈의 뻑뻑함이 사라지지 않아 눈을 비비려던 손으로 종이를 잡자 타이핑 쳐진 몇 줄의 짧은 글자가 보였다.
“아이가 열이 날 때 해주시면 좋은 것들이 적혀있는 안내문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아이가 아픈 게 처음인가요?”
“...네?”
“아버님이 너무 당황한 것 같으셔서요.”
“...처, 음은 아닐 겁니다. 지금까지 어머니가 봐주셔서 잘 몰랐었는데, 제가 겪은 건 처음이라 조금 많이 당황한 것 같네요.”
“아버님이 놀라신 마음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아이 앞에서라도 태연한 척 해주셔야해요.”
“네?”
“아이는 귀신같이 제 부모의 기분을 알아차려요. 참 예민하죠. 어른들이 생각하기론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를 것 같지만. 아이는 생각보다 참 많은 걸 알고 있고, 눈치 채고 있거든요.”
“…….”
“아이도 분명 느꼈을 거예요. 아버님이 당황하신 거. 그럼 아이는 자꾸만 속으로 삭히게 되요. 아빠가 당황한 모습이 보기 싫으니까.”
의사의 말에 허가 찔린 백기가 꾹 오므린 손가락 사이로 종이가 보기 싫게 주름졌다. 가만히 눈을 내리깐 백기의 표정을 보고 의사가 다 안다는 듯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냥, 간단해요 아버님. 간단하지만 하기 힘드실 지도 몰라요. 익숙지 않은 일을 하는 건 힘들지만 시작하는 게 망설여질 뿐이니까 용기를 내주세요. 집에 가서 아이에게 계속 웃어주세요. 계속 안아주시고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시고. 별거 아닌 일에 아이는 안심하고 또 안심하거든요.
이젠 제법 편안한 모습으로 잠든 백서를 멀건 눈으로 바라보던 백기의 눈에 오늘 하루 종일 꾹꾹 눌러 참았던 눈물이 고여 흘러내렸다. 아이의 소식을 듣고도 용기 내어 밖으로 나서지 못했던 백기가 눈물을 흘렸다. 아이에 대한 미안함의 눈물이 한 방울, 그 위로 덧대어 그려지듯 흘러내린 눈물 한 방울은 자신의 망설임에 대한 혐오감의 눈물. 저를 당황스럽게 바라보는 의사 선생님의 모습이 보임에도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손끝으로 몇 줄 안 되는 글자들을 더듬거리느라 잔뜩 해진 종이는 잔뜩 닳아있었다. 서툰 솜씨로 야채를 잘게 잘라 뭉근하게 밥과 끓여낸 서툴기 그지없는 죽을 먹이고 시럽 약까지 먹이는 데 성공했지만 열이 떨어지지 않아 색색 숨만 몰아쉬는 안쓰러운 백서를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한 백기가 의사선생님이 건네줬던 유의점이 적힌 종이를 꺼내들어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몇 가지 간단한 방법만 적혀있는데도 초보아빠에겐 그 모든 것이 어색할 뿐이었다.
“어, 옷을 다 벗기고…….춥지 않나? 그럼 감기가 더 심해질...아냐, 의사선생님 말 듣자. 그리고 미지근한 물을 수건에 묻혀서 몸을 닦...찬물이 아니고?”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느다랗게 뜬 백기가 문장을 한참이나 노려보다 이내 방법이 없단 걸 알고 막 수건에 물을 적시러 가려던 참에 핸드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가 오다니. 시계를 흘끗 보자 어느새 밤 열시가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귀찮음에 미간을 찌푸리려던 백기가 액정에 뜬 이름에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네, 강대리님!”
“장백기씨, 아이는 좀 어떻습니까?”
“아, 음. 연락을 제가 드렸어야 했는데. 덕분에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감기입니까? 요즘 같은 환절기엔 열감기가 유행인데요.”
“아 네, 약을 먹이긴 했는데 열이 아직은 떨어지지 않네요.”
“미지근한 물을 대야에 담아 와서 깨끗한 수건에 적셔 몸을 닦아주세요.”
“....네?”
“혹시 찬물로 하려던 건 아니죠?”
“...어, 아닙,”
“찬물로 하면 한기가 돌아서 열이 떨어지지 않고,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더 안 좋으니 미지근한 물을 적셔서 심장에서 먼 부분부터 꼼꼼히 닦아주세요. 발끝이나 손 끝 같은 곳부터요.”
고저 없는 해준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울리는 걸 귀 기울여 듣던 백기가 갑자기 쏟아지는 지식들에 놀라 허둥지둥 주위에 펜이 있나 두리번거렸다. 이내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해준의 말을 받아들이느라 머릿속을 바삐 굴리던 백기가 감탄 섞인 신음을 뱉어냈다. 우와.
“아, 네! 그. 굉장히 잘 아시네요, 강대리님..?”
“아, 뭐. 그보다 장백기씨.”
“네!”
“내일 바쁩니까?”
“아, 아니요. 내일 토요일이니 아이와 함께 집에 있을 것 같은데..”
“그럼, 놀러가도 되죠?”
“....네?”
“그럼 내일, 오후 1시쯤에 가볼게요.”
“저, 강, 강대리님! 잠시,”
“주소 바로 메시지로 보내주세요. 그럼 병간호 잘하십쇼. 장백기씨.”
강대리님!! 기어이 비명처럼 터진 백기의 외침에도 무심히 끊어진 전화기를 멍하니 바라보던 백기가 액정이 검은 화면으로 바뀌자 당황스러움에 손을 떨었다. 이, 이 인간이 뭐라는..., 거친 말이 튀어나오려던 순간 백서의 희미한 부름에 황급히 화장실로 가 미지근한 물을 받았다. 촤악, 물이 대야에 부딪혀 하얀 거품을 내는 걸 바라보던 백기가 이를 악물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밤에 잠을 자기는커녕 청소에 빨래에 쌓인 설거지들을 황급히 처리해야했다. 지친 몸이 아프다며 항의의 소리를 냈지만 백기는 애써 무시하며 마른 수건과 대야를 챙겼다. 히이, 아빠아. 헤죽 웃으며 백기를 반기는 백서의 모습에 따라 웃던 백기가 속으로 눈물을 잔뜩 삼켜냈다.
*
불도저 강해준씨...(부들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