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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백기] 어디까지나 치료입니다. (조각)

박둡 2015. 5. 24. 21:54

어디까지나 치료입니다.

w. 박두부





사랑니, 아래위턱의 영구치열 치아 중 가장 안쪽에 나오는 세 번째 큰 어금니. 백기는 푸른 컴퓨터 화면에서 보여주는 사랑니의 정의를 읽다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눌러 그 창을 꺼버렸다. 위치는 지금 그딴 설명 없이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으니까 그딴 거 말고 제발 이 통증이 없어지는 방법 좀!


욱씬, 또다시 아릿한 통증이 백기의 어금니를 찔러왔다. 치통 따윈 생전 느낄 일 없을 꺼라 자부해왔던 건치의 상징 장백기였는데, -사실 건치인 것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것이었지만- 며칠 전부터 미친 듯이 쑤셔오는 사랑니의 고통에 매일 밤 눈물 콧물 쏙 빼느라 백기는 요 며칠간 밤에 제대로 잠들 수가 없었다. 쓰으읍, 아파. 눈꼬리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않은 채 마우스 휠을 굴려 내려 네ㅇ버 건강백과로 들어갔다. 그래, 건강백과라면 내 아픔을 해소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은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백기는 어질어질한 눈을 한번 비볐다. 


‘...큰 어금니 중 세 번째 위치인 제3대구치를 말하는데 구강 내에 제일 늦게 나오는 치아이다. 보통 사춘기 이후 17~25세 무렵에 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는 이성(異性)에 대한 호기심이 많을 때며 특히, 새로 어금니가 날 때 마치 첫 사랑을 앓듯이 아프다고 하여 “사랑니”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또한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시기에 나온다고 하여…….’



욱신! 아, 방금 이건. 진, 짜 아팠다. 바늘처럼 날카롭진 않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뜨개질바늘같이 끝이 뭉뚝한 걸로 백기의 어금니를 사정없이 찔러오는 둔한 격통에 백기가 황급히 볼을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볼살이 밀려 입술이 돌아갈 정도로 강하게 눌렀음에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심해지는 치통에 기어이 입안의 여린 살을 짓씹었다. 맞닿은 어금니를 여러 번 꽉꽉 물어도 기존의 끔찍한 치통을 누르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딴 게 첫 사랑의 통증이라면 백기 저는 평생 첫사랑을 하지 않으리라. 컴퓨터 전원을 끌힘조차 없어 대충 모니터 전원만 오프한 백기가 비척비척 침대로 걸어가 그대로 몸을 눕혔다. 싸구려 매트리스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이젠 한기까지 도는 몸을 다급히 두터운 이불로 감싸며 백기는 절로 나오는 앓는 소리를 참지 않았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비척거리며 들린 약국에서 무조건 잘 드는, 효과좋은 진통제를 달라며 울먹인 백기가 용법도, 용량조차 보지 않은 채 손에 잡히는 데로 씹어 삼켜낸 약은 이빨의 통증을 가라앉혀주기는커녕 빈 속을 자극해 구토감만 유발할 뿐이었다. 깨 있어봐야 고통에 괴로워 할 뿐이었다. 제발, 제발 잠들어 버리자. 억지로 눈을 꾹 눌러감았다. 속눈썹이 눈꺼풀에 눌려 잔뜩 구겨지는 것 같았지만 알 바가 아니고. 이불속에 잔뜩 웅크린 몸을 숨기며 백기가 이를 악물었다.



*



“백기씨, 얼굴이 완전 반쪽이네. 어이고, 볼도 팅팅 붓고.”


석율답지 않은 진지한 얼굴과 말투가 탕비실에 울리자 영업 3팀의 커피를 젓던 그래마저 고개를 돌려 백기의 낯을 살폈다. 이제 막 탕비실에 한걸음 들어왔음에도 그 짧은 순간에 백기의 상태를 어찌나 빠르게 눈치 챈건지.

대답하려 입을 열기엔 찌르듯 이어지는 통증이 괴로워 백기는 볼이 패이도록 꽉 이만 악물며 대답을 피했다. 그래의 옆으로 다가와 커피믹스 한 봉지를 들자 옆에서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래가 손을 들어 백기의 믹스를 쥔 손을 막았다.

의아함에 눈만 돌려 바라보는 백기의 시선을 가볍게 받아넘긴 그래가 백기의 빈 종이컵을 가져가 찬물과 뜨거운 물을 섞어 적당한 온도의 미지근한 물을 만들더니 백기에게 내밀었다. 백기백기 괜찮아? 하며 어깨에 매달리려하던 석율조차 헬쓱한 얼굴로 그래에게 어떠한 말도 없이 물컵을 받아드는 백기의 처진 어깨가 영 신경쓰이는지 미간을 좁히다가 맞은편에 반듯하게 마주선다.


의아함에 물을 마시려던 손을 멈추고 석율을 바라보자 석율이 진지함을 담뿍 담은 눈을 하고선 양 손바닥으로 백기의 볼을 쥐어온다.


“아.”

“...에?”

“아, 해봐 백기씨.”

“지금 뭐하..”



백기가 인상을 쓰며 밀어내려하자 꾹, 볼을 눌러오는 석율의 손아귀 힘에 절로 고통의 신음을 흘리며 입을 벌렸다. 벌어진 입을 고개를 숙여 꼼꼼히 살피는게 제법 진지해 백기는 성질 내려는 타이밍도 놓치고 어정쩡하게 석율에게 볼을 맡긴 채 입만 벌리고 있었다. 마치 치과에서 어벙벙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찜찜하기 그지없었다.

 


*


모종의 이유로 멈춘 해백 조각글입니당.

치과의사 강해준*환자 장백기